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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예측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미래 [스페셜리스트뷰]

유통

‘명품’이라 불리며 개인의 기호품으로 군림하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안착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몇몇 브랜드가 매출에서 글로벌 톱 5위 안에 들 정도로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글로벌 제품 출시 이전에 제품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위치도 공고히 하고 있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지난 30여 년간 성장세를 지속하던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은 요즘, 럭셔리 브랜드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지 몇 가지 요소로 예측해본다. 진정한 ‘명품’만이 살아남는다“요즘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요? 어렵죠.” 최근에 만난 모 럭셔리 브랜드 지사장의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럭셔리 브랜드의 경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지표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어렵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럭셔리 브랜드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은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초고가의 제품은 여전히 잘 팔리고,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대의 럭셔리 브랜드는 판매가 부진한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초고가의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의 하나는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대상이 경제적인 상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초고소득층은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건을 구입한다. 두 번째로 요즘 럭셔리 브랜드 중 거의 유일하게 성장을 하는 품목이 하이 주얼리라는 것도 한몫한다. 대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한 나라에 진출할 때는 일종의 패턴이 생긴다. 진입 초기에는 가방이나 신발 같은 가죽 액세서리, 이후에는 옷, 가구, 자동차 등의 라이프스타일 제품 그리고 하이엔드 시계와 하이 주얼리로 이어진다. 이는 가격이 낮은 순서가 아닌 품목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쉬운 순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다. 일상에서 가깝게 사용할 수 있는 품목부터 개인적이고 특별한 취향으로 옮겨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이 주얼리와 하이엔드 시계의 매출, 특히 하이 주얼리의 매출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당시 중국 럭셔리 브랜드 시장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에서, 중국으로 갈 예정이었던 몇몇 하이 주얼리 제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판매 신장의 한 요소로 작용했다. 하이 주얼리는 각 제품당 한 피스씩밖에 만들지 않는다. 즉 다른 나라의 VIP가 구입을 해버리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하이 주얼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부쩍 높아진 국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진 것도 매출 상승의 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최근에 톱 주얼리 브랜드가 우리나라 VIP를 대상으로 하이 주얼리 행사를 개최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글로벌 패션 전문 미디어 BOF와 매킨지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문가들은 2025년에 하이 주얼리의 성장 가능성을 4~6%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여타 품목의 성장세보다 높은 신장률을 예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30년 간의 럭셔리 브랜드를 경험한 고객들이 진짜 좋은 제품을 선별하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온 제품이라면 무조건 구입하던 시대도 있었고, 근사한 브랜드 네임에 아낌없이 투자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장이 확대된 만큼 소비자도 성숙해졌다. 에르메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까르띠에, 티파니,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부셰론, 프라다, 로로 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몽클레르 등 매출이 좋다고 알려진 브랜드는 유명하고 가격이 높아서가 아니라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이같은 상황은 고급 화장품이라고 하면 으레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을 연상하던 몇 년 전과 달리, 전반적인 국내 화장품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많은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 매출이 전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제품’을 알아보는 소비자의 눈이 한층 예리해진 것이다. 심지어 국내 화장품은 가성비도 갖추고 있으니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곤란한 시기이다.우리는 흔히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명품(名品)이라 부른다. 럭셔리 브랜드가 명품이라고 불리게 된 연유는 명확하지 않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를 하나의 용어로 정리하려는 과정에서 품질이 고급스럽고, 가격이 비싸며, 만듦새가 특별한 제품을 가리키는 적당한 단어로 선택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럭셔리 브랜드를 명품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범용화된 명칭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는 진짜 ‘명품’이라고 불릴만한 제품력과 디자인 그리고 견고한 브랜드 인지도를 갖추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의 양극화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번의 클릭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 필요해!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많은 럭셔리 브랜드의 고민은 “온라인에서 우리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격에 맞느냐’는 것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은 여전히 ‘대중적인’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고 위풍당당하게 오픈한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중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많지 않다. 이들이 겪은 오류의 하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단지 ‘제품’으로만 취급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디지털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에도 럭셔리 브랜드의 ‘톤앤매너’(tone & manner)를 입히는데 더 공을 들였어야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각 럭셔리 브랜드도 자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희소성을 강조하고, 웹사이트 환경에서도 브랜드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풍기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가 소위 ‘럭셔리 브랜드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서울, 강남, 백화점이나 부티크에서만 구입할 수 있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의 판매를 전국구로 확장시킨 것은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그럼에도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의 청담동에는 굴지의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달아 오픈하고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비전을 총 망라하여 보여주는 곳이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루이비통 메종 서울,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까르띠에 메종 청담, 하우스 오브 디올에 이어 몇 년 전엔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이 문을 열었고, 작년에는 오데마 피게 플래그십 스토어, 올 5월에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종 1755 서울이 오픈했다. 각 플래그십 스토어는 파리나 뉴욕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넘어서는 위용을 자랑할 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예술적인 특징을 가미한 것이 주목할 만 하다. 2026년에는 티파니가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계획이라는 점에서 한국 시장이 갖는 중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4년 여의 기간과 5억 달러(약 6850억원)를 들여 레노베이션 후 2023년 개장한 뉴욕의 티파니 더 랜드마크는 플래그십 스토어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곳이다. 브랜드의 심장으로서 또한 뉴욕의 명소로서 활약하는 티파니 더 랜드마크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한 이유는 하나다. 당장의 캐시카우 역할 보다는 럭셔리 브랜드 고객이 원하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경험’이 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는 한번의 클릭만으로는 도저히 충족되기 어려운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여 필요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온라인 쇼핑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오프라인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정성스러운 서비스와 환대, 제품을 고르는 시간과 과정을 놓칠 수 없는 법. 각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보다 VIP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예술 작품을 둘러보고 가끔은 식사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넓게 마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객단가’를 넘어서는 고급스럽고 독창적인 경험의 제공이라는 목적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의 결합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구입은 더욱 정교해지고 편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이 편리해질수록 ‘화면 안에서는 누릴 수 없는 품격있는 특별한 순간’을 제공하기 위한 오프라인 장소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은 ‘생필품’이 아닌 ‘기호품’이기 때문이다. 취향이 트렌드인 시대,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약진흔히 의식주라고 말한다. 사람이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의 순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외모를 다듬었으면 먹는데 좀 더 집중하고 그 이후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다. 럭셔리 브랜드의 진출 품목이 가방, 옷에서 음식, 가구, 조명 등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루이비통, 디올, 구찌, 조르지오 아르마니, 에르메스 등의 브랜드는 오래 전부터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확장을 시도했다. 펜디 역시 1987년부터 라이선스를 통해 가구를 소개해왔고, 2021년부터는 자사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종종 만나는 에르메스와 디올의 찻잔은 단지 주력 품목이 아니었을 뿐 오래 전부터 일상에 자리해왔다. 가구, 그릇, 커트러리, 타월, 에어팟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리빙 아이템을 늘려가는 것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옷이나 액세서리로만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을 것이고, 품목이 늘어남으로 인한 판매 증진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또 하나 다종다양한 제품과 가격대를 통해 자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성을 넓히는 요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특히 라이프스타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매년 4월이면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구 박람회인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패션 브랜드의 부스를 만나볼 수 있다. 일찌감치 박람회에 참가해왔던 펜디와 에르메스, 루이비통 외에도 돌체앤가바나, 로로 피아나, 프라다, 미우미우 등의 독특한 부스에는 패션 DNA가 가미된 리빙 제품을 보려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샹들리에로 유명한 바카라, 이탈리아의 유명 부엌 시스템인 보피, 생활 가전 다이슨 등의 국내 매출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얼마 전 다이슨은 새로운 청소기 펜슬백 플러피콘의 첫 론칭 장소로 서울을 택했을 정도로 ‘한국 소비자의 피드백’에 진심이다. 리빙 전문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할 것 없이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다’라는 암묵적인 정의에 몰입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의 경우 대표 제품으로서 기억되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되고 싶은 바램과 취향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흥미는 날로 높아질 것이다. 필자는 1993년부터 2023년까지 프리미엄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한 초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명품 시장의 성장과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제45회 한국잡지언론상 기자 부문을 수상했고, 럭셔리 브랜드를 주제로 대학과 기업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디엘(DL)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5.07.13 08:50

7분 소요
‘주가조작=패가망신’, 그리고 도이치모터스 사건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에 분산된 조사·심리 기능을 합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이 이달 말 출범할 예정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7월 30일을 목표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을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기 “한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며 주가조작에 대한 엄단 의지를 보인 것과 관련해 실행안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금감원 부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합동대응단은 금융위 4명(강제조사반), 금감원 18명(일반조사반), 거래소 12명(신속심리반) 등 34명으로 구성되고 향후 50명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인데요, 불공정거래 전력이 있는 사례, 대주주 등이 미공개 중요 정보를 이용한 사례, SNS·허위보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합동대응반의 주된 업무 분야가 될 전망입니다. 거래소의 시장감시체계도 계좌 기반에서 개인 기반으로 전환되고, 시장감시시스템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되는 등 개선됩니다. 금융당국은 불공정거래·불법공매도·허위공시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도 철저히 적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주가조작 근절 행보에 업체들도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주식투자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중 하나인 네이버 종목토론방이 최근 전격 개편을 단행해 반드시 닉네임을 설정하고 개인별로 글을 쓴 기록이 모두 공개되도록 했습니다. 종목토론방에서는 각종 허위 정보 유포와 주가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이번에 불공정거래의 오명을 벗겠다는 것입니다.그동안 정부는 주가조작에 대한 엄단을 얘기해 왔지만 실제로 이뤄진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주가조작은 은밀성과 복잡성 등으로 인해 실체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고, 적발돼도 과징금이나 가벼운 처벌에 그치면서 심각한 범법 행위라는 인식이 낮아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들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이번에는 달라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했듯 ‘주가조작=패가망신’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원리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돼야 합니다. 2009∼2012년 발생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김건희 여사가 돈을 대는 ‘전주’로 가담했는데도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며 면죄부를 줬다고 국민적 공분이 일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9명이 기소돼 대법원에서 전원 유죄를 확정받았는데요, 특히 김 여사와 유사한 전주 역할을 한 손모씨도 법원에서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유죄를 받았습니다. 특검팀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를 비롯해 김 여사 연루 의혹이 있는 다른 주가조작 사건들도 수사하고 있는데요,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져 한국 증시에서 주가조작범은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2025.07.13 07:00

2분 소요
‘달러 스테이블코인’ 도입...韓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김기동의 이슈&로(LAW)]

전문가 칼럼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달러’로 결제하는 시대가 곧 열리게 됐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는 GENIUS Act(2025)가 지난 6월 17일 미국 상원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고, 하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결제 수단으로서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됐다. 대중화된 첫 스테이블코인은 2014년 등장한 테더(USDT)다. 미국 달러와 1대 1로 페깅(pegging, 가치 고정) 돼 있다. 바이낸스, 바이비트, 코인베이스 등 해외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코인 거래 및 결제에 스테이블코인을 사용 중이다.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송금 수단으로 명확히 규정하면서 모든 발행 물량을 미 달러 또는 우량 국채와 같은 고품질 자산으로 1:1 담보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발행사는 분기마다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 준비금 보유 현황을 공개해야 하고, 미 금융정보분석원(FIU) 등록과 각 주(州) 금융당국의 인가를 동시에 받아야 한다. 은행·보험사 등 전통 금융기업에도 발행 허용권을 부여함에 따라, JP모건·뱅크오브아메리카·페이팔·비자 등 대형 기관들은 자체 달러 기반 코인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들은 기존 결제망과 고객을 기반으로 P2P 송금·크로스보더(cross border) 결제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것이다. GENIUS Act는 ‘디지털 금융의 새 질서’를 수립하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CBDC 경쟁 가속화...美 달러 패권 지키나 미국이 디지털 달러 시대를 서둘러 연 이유는 무엇일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막대한 규모의 미국 국채를 담보로 매입함으로써 미 국채 시장이 안정적 수요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나아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유럽의 디지털 유로 등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다.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상에서 중개기관 없이 개인 간(P2P) 직접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은행 중심 금융 체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은행 시스템은 영업시간과 중개 기관 수수료, 국가 간 결제 인프라 차이 때문에 비용과 속도 측면에서 제약이 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 콘트랙트가 자동으로 거래를 처리하고 분산원장에 즉시 기록하기 때문에 24시간·저비용·즉시 결제가 가능하다.스마트폰 지갑 앱을 통해 손쉽게 주소를 입력하거나 QR코드를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가치를 전송할 수 있다. 은행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저개발 국가에서도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무역대금 결제에서도 환전 과정을 생략하고 선적 조건이 충족되면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동으로 대금을 송금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기존의 신용장 방식보다 훨씬 투명하고 효율적인 결제가 가능하다. GENIUS Act 시행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미국 정부는 GENIUS Act 시행에 맞춰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금융만큼 엄격한 자금세탁 방지 체계(AML)와 테러자금조달 방지 체계(CFT)로 편입하는 등 규제·모니터링·과세·감독 전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불법 자금 세탁이나 탈세 수단이 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조치다.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활용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약 57조원에 달하며, 이 중 83.1%를 USDT가 차지한다. 서울 남대문시장 등 일부 전통시장에서는 가상자산 자동 환전기와 디지털통화 환전기가 설치돼 관광객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현금으로 바꾼 뒤 원화로 결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왔다. 환전 절차를 우회한 자본 유출·유입은 기존 외환·자본통제 제도를 교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해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전송한 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바로 원화로 환전할 경우, 현행 외국환거래법상 신고·제한 의무를 쉽게 회피할 수 있게 된다.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때 투자자나 기업이 원화 대신 스테이블코인으로 자산을 옮기면 자본유출이 가속화되고, 급격한 환율 변동은 수입 물가 상승과 물가 불안을 초래해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화 주권이 위협받고, 원화 기반의 금융시스템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 혁신의 기회, 그리고 리스크 차단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자체를 검열하거나 특정 토큰 전송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적 수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가상자산과 법정화폐가 상호 전환되는 지점, 즉 거래소·지갑 사업자를 통한 온·오프 램프 단계에서만 엄격한 라이선스 기준과 KYC(고객확인)·AML(자금세탁방지) 등 규제를 작동할 수 있을 뿐이다.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성장과 확산은 기존 법체계 전반의 개정·보완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스테이블코인과 스마트 컨트랙트는 기존 법률의 ▲물건 ▲증권 ▲외국환 ▲계약 ▲채권 ▲문서 ▲재물 ▲재산 등의 개념으로 포섭하기 어렵다. 새로운 분쟁 유형과 신종 범죄가 등장할 것이고, 해석과 단속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할 것이다. ‘디지털 달러’의 권리·의무·집행 절차를 기존 법체계 안으로 수용하기 위한 전면적인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이제 한국은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금융 혁신의 기회를 잡는 동시에, 그 이면에 도사린 리스크를 차단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행에 대비한 입법 및 보완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도입에 대해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다. “바람이 불면 어떤 사람은 벽을 쌓고, 어떤 사람은 풍차를 세운다”라는 말이 있다. 변화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 잘 활용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금융 혁신의 핵심 열쇠다. 풍차를 세우는 기업이나 국가만이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과감한 제도 개혁과 선제적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2025.07.12 09:00

4분 소요
‘답변 엔진’ 시대의 주인공 누가 될까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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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 선거로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미래 혁신 동력으로 인공지능(AI)을 지목했다. 추상적인 담론을 넘어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실에 AI정책수석 자리를 신설하고, AI 관련 거점 산업 단지를 조성하여 우리나라를 AI 3대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에서는 새 정부의 지원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과연 우리나라가 AI 3대 강국에 진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보이고 있다. AI 산업은 미국과 중국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두 국가는 AI 산업에 우리나라의 100배에 달하는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연구 인력과 재원이 부족한 우리와 그들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하지만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들의 시각은 AI 연구 집단과는 조금 다르다. 창업자와 벤처 투자자들은 우리가 AI 선진국들을 따라잡고 어쩌면 선두 자리를 탈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검색 엔진’ 시대 저물고 ‘답변 엔진’ 시대 열려 스타트업 생태계 관련자들은 AI 기술이 이제 막 상업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대형 포털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 구축한 검색 엔진(search engine)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신 AI 모델이 구현하는 ‘답변 엔진’(answer engine)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더불어 검색에 대한 개념과 행동은 이용자의 질의응답을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시장 곳곳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 시장에서는 검색 엔진 최적화(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가 아니 AI 최적화(AI Optimization)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대중적인 소프트웨어 이용 방식(SaaS, Software-as-a-Service)이 AI 이용 방식(AaaS, AI-as-a-Service)으로 대체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이런 시장 변화를 감지하고 빠르게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그들은 생성형 AI 모델의 토대를 제공하는 이른바 파운데이션 모델 시장에서 승리하는 기업들이 뚜렷하게 보이는 지금이 AI 상업화를 선도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현재 두각을 나타내는 파운데이션 모델 제공 기업들은 ▲오픈AI(챗GPT) ▲구글(제미나이)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 등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둘러싼 각축전이 끝나면 부가 가치는 AI을 활용하는 시장에서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한 벤처 캐피털리스트는 “인터넷 서비스와 운용 체제가 구축되면서 다양한 정보통신 사업들이 생겨난 것처럼,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다양한 사업에 응용될 것이다”라며 “특히 앞으로 2~3년간 모바일 환경에 AI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이식하는 스타트업들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한 AI 스타트업 창업자는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모바일 대중화를 이끈 것은 전통 대기업들이었지만, 이를 활용해 큰 부가 가치를 만든 것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었다”라며 “AI의 상업화는 국내 스타트업들에게 전례 없는 큰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특히 AI 기술이 구현하는 답변 엔진은 스타트업들에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답변 엔진을 통해 이용자와 긴밀한 상호 작용이 가능해진다. 개별 이용자의 성향을 반영하여 구동하는 AI, 이른바 ‘AI 에이전트’(AI agent)가 등장한다면 시장의 요구는 다양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세분화된 시장에 대응하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대표 B2C AI 서비스 플랫폼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스는 ‘1인 1AI’ 시대를 선언하며 AI 에이전트를 넘어 이용자의 감정적 교류까지 아우르는 ‘AI 동료’(AI companion)를 추구하고 있다.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주도했던 거대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AI 시대의 1막이 서서히 끝나고 있다. AI의 상업화가 시작되는 2막에는 분명히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할 것이다. 당연히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스타트업들만이 기회를 거머쥘 것이다. AI 시대의 적자는 누구일까창조론에 맞서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종의 생존 방식으로 적자생존을 제시했다. 변화에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그의 주장은 힘세고 강한 개체가 생존한다는 기존 다수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AI 시대의 담론은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넘어가고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거대 AI 개발사들은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조직이 거대해지면서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 AI 모델들이 시장을 거의 선점하고 있는 현시점에 시장 흐름에 발맞추어 신속히 변화를 추구하는 스타트업들은 분명 신성장 기회를 포착할 것이다. 이는 거대 AI 모델 개발에서 한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나라에게도 또 다른 도약의 기회가 있음을 의미한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AI 시대의 진화를 이끌어 가기를 희망한다.

2025.07.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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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노인 '빈곤·복지·근로' 정책 방향 검토가 필요하다[스페셜리스트뷰]

전문가 칼럼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런 인구학적 변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노인인구의 비중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며 여전히 노인빈곤의 규모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다.아래 표에서 제시하듯 시장소득 적용 빈곤율은 큰 차이가 없지만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은 감소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1988년부터 시행된 국민연금이 성숙하고, 기초노령연금을 대체해 2014년 7월부터 시행중인 기초연금은 급여 수준이 지속적으로 제고돼 왔다. 2015년 7월에는 통합급여 형태로 제공됐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별(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로 전환됐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및 급여별 기준선 상향 등이 이뤄졌다.사회보장제도의 성숙 및 확대로 노인 빈곤율 감소라는 정책적 성과가 발생했음에도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노인 빈곤층의 규모는 급격한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노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 동시에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높게 만든다. 따라서 노인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구 구성의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노인빈곤의 특성과 노인빈곤에 대응하는 복지 및 근로 관련 정책의 방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사회보장 제도의 한계지난 1월 개최된 제8차 인구 비상대책회의(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서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일본은 35년이 걸렸다. 그런데 한국은 불과 25년이 소요됐다. 우리나라 중위연령의 상승 폭이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의 2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 현 추세를 따르면 우리나라는 2045년에는 고령인구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사회적 위험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인인구가 증가하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은 사회보장 차원의 준비와 대응이 늦어질 경우 빈곤층 등 취약계층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들을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재정부담을 급격히 증가시킬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인구구성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시킴과 동시에 사회적 인식 변화와 맞물려 가구 구성의 변화도 매우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23년 기준으로 가구 규모별 비중은 1인 가구가 35.5%로 가장 높다. 이는 1인 가구가 가구 수가 가장 많은 최빈가구임을 의미한다. 2인 가구는 28.8%로 두 번째로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가구 규모(가구원 수)를 개인단위로 환산하면 가장 많은 인구를 포함하는 가구는 1인 가구가 아니게 된다. 전체 인구 중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가구규모를 최다 인구 가구라 할 때 우리나라의 최다 인구 가구는 2021년까지 4인 가구였다가 2022년에는 3인 가구로, 2023년에는 다시 2인 가구로 변화했다. 개인단위로 환산한 2인 가구는 약 1269만명, 3인 가구는 약 1258만명, 4인 가구는 약 1171만명으로 나타났다. 최다 인구 가구는 불과 3년 동안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이는 가구 규모가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소규모화 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가구 구성의 측면에 있어서도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소득보장제도 측면에서 인구학적 차원의 개인화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현황’ 통계를 살펴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73.5%로 전체 가구의 1인 가구 비중보다 2배 이상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급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015년 60.3%에서 2023년 73.5%로 증가했다. 전체 가구(1인 가구: 2015년 27.2%→2023년 35.5%)보다 그 증가분이 더 크다. 수급가구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수급가구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기준 일반 수급자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41.3%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인 18.6%와 비교해 볼 때 약 2.2배 높은 수준이다. 증가율도 전체 인구에서의 증가율보다 더 크다. 이는 빈곤층인 수급집단에서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를 특징으로 하는 인구학적 차원의 개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초연금의 경우 가구원 전체의 소득인정액이 아닌 본인 및 배우자의 소득인정액을 통해 선정 여부 및 급여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보다는 상대적으로 개인 특성이 반영된 제도로 볼 수 있다. ‘통계로 본 2023년 기초연금’에 따르면, 기초연금의 경우 부부가구의 비율 증가 폭(2015년 48.8%→2023년 51.8%)이 단독가구보다 더 크지만, 단독가구의 규모(2015년 약 231만 가구→2023년 약 314만 가구)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2023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령인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2018년 19.5%→2023년 22.5%)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제도적 차원의 개인화를 고려할 때 급여 대상자의 선정 및 급여 수준 등을 단순히 가구 규모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특성과 실태를 반영한 선정 기준과 급여 수준의 설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적용되는 가구균등화지수의 경우 가구 구성원의 연령대별 특성이 일부 반영되지만 가구 구성원의 모든 연령대와 성별 그리고 지출수준 등 다양한 가구 구성원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노인이 포함된 가구의 경우 비노인 가구 그리고 노인이라도 연령대에 따라 지출 특성과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급여 선정 및 수준 결정에 있어 가구 구성과 연령대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기준선 제시가 필요하다.노인인구의 증가와 독거노인 가구 등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 그리고 이들의 높은 빈곤율과 복지제도 수급률은 기존 소득보장제도들의 노정된 문제점 등과 맞물려 예상보다 빨리 근본적 차원의 제도 변화 또는 개편을 초래할 수 있다. 노인 빈곤의 특성…나이 많을수록 가난 비중도 높아노인에 대한 사회보장 차원의 최대 현안이자 난제는 노인빈곤의 문제다. 노인빈곤의 규모나 측정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노인빈곤이 상대적으로 다른 연령별 집단에 비해 그 규모 및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노인빈곤 규모는 OECD 국가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보면, 66-75세 노인 빈곤율과 7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의 격차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해당 연령층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OECD 국가들의 66세 이상 빈곤율은 평균 14.2%으로 나타났고 이중 66-75세 노인의 빈곤율은 12.5%, 76세 이상 노인의 비곤율은 16.6%인 점을 보았을 때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6세 이상 노인의 경우 근로능력이 없거나 매우 취약할 가능성이 66-75세 노인보다 더 높기 때문에 이들의 소득원은 이전소득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 76세 이상 노인에 대한 빈곤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소득, 특히 공적 이전소득 측면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66-75세 노인의 경우 76세 이상 노인과 비교하면 소득수준 제고를 위해 근로활동에 대한 지원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용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2015년 30.4%→2023년 37.3%), 65-69세의 경체활동 참여의사는 67.6%에 달한다(70-74세 54%, 75-79세 41.3%). 따라서 근로소득 증대를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수록 있도록 이들 대상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을 더욱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 노인 빈곤은 공적연금의 성숙 등으로 인해 그 규모가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인빈곤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를 축소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에서 핵심적인 것이 1인 가구의 빈곤 문제이다.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노인 빈곤율의 경우 2022년 기준으로 중위소득 50% 기준으로 시장소득 적용 빈곤율은 57.8%, 경상소득 적용 빈곤율은 41.1%, 처분가능소득 적용 빈곤율은 38.1%로 나타났다. 그런데 노인 1인 가구 빈곤율은 해당 소득을 적용할 경우 각각 86%, 75%, 71.8%로 나타났다. 상대적 빈곤임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최저소득기준 설정과 적용 필요지금까지는 급속한 고령화와 관련한 사회보장 측면의 변화와 노인빈곤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빈곤 문제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노인 빈곤 실태와 기존 소득보장제도의 급여 선정 기준 및 적정성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최저소득기준(Minimun Income Standard, MIS)의 설정과 적용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노인에 대한 적정 소득보장 수준에 제시와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 둘째, 노인빈곤 대응을 위한 단기적 차원의 대응으로 소득보장 측면에서 사각지대 해소 및 중·고령층의 근로 유지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미래 노인 빈곤 대응을 위한 중장기적 차원에서 소득보장제도의 개편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연금에 대한 구조개혁과 더불어 공공부조의 개편이 요구된다. 넷째, 소득보장제도 개편에 있어 공적연금과 공공부조 제도간 관계 및 정합성 제고를 위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검토와 지속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양한 기준선 마련 차원에서 최저소득기준(MIS)은 어떤 국가나 사회의 최소소득의 적절성 또는 정책적․정치적 판단의 기준으로서 다양한 MIS를 통해 현행 최저소득을 보호하는 제도들의 보장 수준 및 적정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구 구성 및 연령대별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MIS 설정을 통해 제도 개선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MIS 적용시 단순히 연령대별 지출 수준만을 반영할 경우 노인에 대한 기준선이 낮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영국과 일본 등에서 검토된 바 있는 “Focus group central approach” 등을 통해 산출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다양한 가구 유형별 기준선 설정을 위해 일반인들로 ‘Focus group’ 형성하고 다양한 가구유형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해당 가구 유형들이 일정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성하고 이에 대한 지출 수준을 집계해 파악한다. 현재의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MIS가 절대적 방식의 최저생계비 등 말 그대로 최저 생활수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과 사회구성원의 인식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 단기적 차원에서 검토 및 반영될 사항으로 현재 노인의 소득보장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의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령층 또는 노인 대상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로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노인일자리 사업 등에 대한 확대와 질적 제고 등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로소득 공제를 확대하거나 근로장려금 중 근로소득이 많아질수록 급여가 증가하는 점증구간을 확대하는 등 저소득층의 근로유인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복지급여 수급으로 인한 노동공급 감소를 축소시킬 수 있는 근로 인센티브도 강화할 수 있다. 고령층이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고령층 고용에 대한 지원 또한 필요하다. 노인을 포함한 소득보장의 사각지대 축소 측면에서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폐지 및 자동차 기준의 적용 완화 등 제도의 적용범위 차원의 확대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년연장에 있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일자리 나눔에 대한 검토와 지속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 연금개혁·공공부조 개편 검토해야 노후소득 보장 측면에서는 연금개혁과 함께 공공부조제도의 개편도 미래 노후소득보장에서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앞서 살펴본 인구학적 변화 및 제도의 개인화 그리고 다양한 소득보장제도들의 목적과 근로 능력 여부 등을 고려해 유사한 제도들로 통합하여 효율성과 정책 효과성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제도 개편을 통해 제도 대상자들이 더 많이 일하거나 그들의 노동공급 감소를 축소시킬 수 있다면 이는 미래 노인 비곤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안적소득보장제로서 ▲디딤돌소득 ▲기본소득 ▲기회소득 등의 참여소득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적 소득보장제도들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를 대체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대와 강화 또는 대안적 소득보장제도 도입에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소득보장제도의 개편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제도 개편에 있어 중요한 것은 보장수준과 함께 근로유인이 핵심적인 검토 사항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공적연금과 공공부조 제도 개편 시 제도의 연계 및 정합성 제고를 위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회보험제도는 대상의 기여를 전제로 하지만 공공부조의 경우 대상의 기여와 상관없이 자산조사를 통해 급여가 지급된다. 여기서 국민연금과 같은 이전소득이 공공부조 제도들의 소득 인정액에 포함되기 때문에,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를 받지 못하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대로 기초연금 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수준이 높아질수록 공적연금에 대한 기여금 납부 회피 및 공공부조 기준선 근처에서의 근로 또는 노동공급 회피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연금제도 개선 또는 개편을 통한 노후소득보장 강화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될 부문이지만 노인 빈곤과 노인의 최저생활보장을 위해서는 노인 대상 또는 노인을 포함하는 공공부조의 급여 수준 제고가 필요하다. 연금 가입과 기여금 납부가 미래에 대한 대비라면 공공부조는 현재의 빈곤과 사회적 위험 대응과 직결된다. 하지만 현재의 공공부제도의 급여설계는 노동 공급 여부와 수준에 영향을 미쳐 미래 노후소득 보장에 대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개혁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연금에 대한 개혁은 이미 다양하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공부조와의 관계 설정과 역할 그리고 공공부조의 구체적 개편의 방향성이 제시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노후소득보장 측면에서 연금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만 이를 온전히 실시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적정한 소득보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공부조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며, 재원마련 방안에 대한 검토도 이뤄져야 한다. 이는 매우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진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하고 지속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인구 및 가구 구조의 변화 그리고 여전히 심각한 노인빈곤 등의 규모를 볼 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다.

2025.07.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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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예술 그 자체”...샴페인 한 병에 담긴 가치 [와인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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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은 과연 궁극의 음료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황금빛 액체와 섬세한 기포에만 있지 않다. 샴페인은 역사·과학·예술·인간의 영감이 한 병에 응축된 종합 예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사랑과 찬사, 불가능을 가능케 한 과학 기술의 발전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들의 혁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샴페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시대를 초월한 명사들의 예찬먼저 시대를 초월한 명사들의 예찬에서 샴페인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고백을 되새겨 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승리했을 때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배했을 때는 샴페인이 필요하다.”(In victory, you deserve Champagne. In defeat, you need it.)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폴레옹에게 샴페인은 단순한 축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승리의 보상이자 패배의 위로였다.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였음을 의미한다.마담 드 퐁파두르는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자를 아름답게 남겨두는 유일한 와인이다.”(Champagne is the only wine that leaves a woman beautiful after drinking it.)라고 말했다.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그녀의 이 말은 샴페인이 가진 우아함과 세련미 그리고 그 마법 같은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윈스턴 처칠은 “제군들, 기억하게. 우리가 싸우는 것은 프랑스만을 위함이 아닐세. 바로 샴페인을 위함일세.”(Remember gentlemen, it’s not just France we are fighting for, it’s Champagne.)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처칠이 남긴 이 말은 샴페인이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지켜야 할 문화와 문명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준다.F. 스콧 피츠제럴드는 “무엇이든 과하면 해롭지만, 샴페인만큼은 과할수록 좋다.”(Too much of anything is bad, but too much Champagne is just right.)는 말을 남겼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광란의 1920년대를 묘사한 그는 샴페인을 통해 삶의 환희와 축복 그리고 즐거운 탐닉의 정점을 표현했다.매릴린 먼로도 샴페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나는 샤넬 넘버 파이브를 뿌리고 잠자리에 들고, 파이퍼 하이직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I spray Chanel number five, go to bed, and start the morning with a cup of Piper Heidsieck.)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기의 아이콘이었던 그녀에게 샴페인은 아침을 깨우는 활력이자 그녀의 화려한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샴페인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여성들유독 샴페인의 역사에서는 남성 중심의 와인 세계에서 놀라운 혁신을 이뤄낸 위대한 여성들의 이름이 빛난다. 27세에 남편을 잃은 뵈브 클리코 여사는 샴페인을 흐리고 지저분한 상태에서 맑고 영롱한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르뮈아주’ 기술을 발명했다. 그녀의 혁신은 샴페인의 품질을 극적으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뵈브 클리코를 세계적인 샴페인 하우스로 성장시켰다.19세기 중반까지 샴페인은 매우 단맛이 강한 디저트 와인이었다. 남편을 잃고 사업을 물려받은 잔 알렉상드린 루이즈 포므리 여사는 단맛을 선호하지 않는 영국 시장을 겨냥해, 당분 첨가를 최소화한 최초의 ‘브뤼’(Brut) 스타일 샴페인을 1874년에 선보였다.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전 세계 샴페인의 표준을 바꾸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됐다.릴리 볼랭저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볼랭저 하우스를 굳건히 지켜냈다. 특히 품질에 대한 그 어떤 타협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샴페인의 품질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나는 행복할 때 샴페인을 마신다.”(I drink champagne when I’m happy.)는 명언을 남기며 볼랭저를 단순한 샴페인이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만들었다.카미유 올리-로드레 여사는 대공황과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에 루이 로드레 하우스를 물려받았다. 그는 샴페인의 품질이 결국 포도밭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으로 최고급 포도밭을 공격적으로 매입했다. 그의 선구안적인 투자는 오늘날 루이 로드레가 최고의 샴페인 하우스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초석이 됐다.샴페인은 때로는 운명을 결정짓는 신화적인 상징이 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선박 진수식에는 샴페인병을 뱃머리에 깨뜨리며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이 진수식을 생략했고, 결국 첫 항해에서 비극적인 침몰을 맞이했다는 설은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샴페인이 단순한 축복의 의미를 넘어, 성공과 안전을 기원하는 강력한 상징임을 보여준다.나폴레옹은 전쟁에 나설 때마다 모엣 샹동의 지하 셀러를 찾아, 칼로 샴페인 병의 목을 날리는 ‘사브라주’(Sabrage) 의식으로 승리를 기원했다. 하지만 그가 워털루 전투에 출정하기 전에는 이 의식을 치르지 못했고, 결국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샴페인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하며 때로는 승리의 예언, 때로는 실패의 복선으로 작용하는 신비로운 존재감을 드러냈다.샴페인은 다른 스파클링와인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그 이유는 단순히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넘어 역사적 가치와 규제 등이 가격에 온전히 반영되기 때문이다.원산지 명칭 통제(AOC)라는 프랑스 법규에 따르면 샴페인이라는 명칭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지정된 포도 품종·재배 방법·양조 방식에 따라 생산된 스파클링와인에만 사용할 수 있다. 샹파뉴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정돼 포도밭 면적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곳의 포도밭은 세계에서 비싼 농지 중 하나다.샴페인은 한잔의 술이 아니다. 그것은 위대한 인물들의 찬사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불가능에 도전한 과학 기술의 힘으로 완성됐으며,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들의 영감으로 빚어진 하나의 종합 예술 작품이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샴페인을 단순한 음료를 넘어선 명실상부한 ‘궁극의 음료’로 만든다.

2025.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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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바뀌지 않으면 AI 한국 떠난다 [이근면의 시사라떼]

전문가 칼럼

인공지능(AI)이 열풍이다. AI가 대한민국이자 미래고 5000P라 한다. 전국민이 열광하는 AI는 우리 옆에 성큼 시대의 선물로 올 것만 같다. 그런데 자동차의 겉모습만 화려하다고 자동차 시대가 될까? 고속도로, 정비 능력, 주유소, 엔진, 특히 운전자는? 환경과 생태계가 시급한데 우선순위를 차분히 생각할 때이다. 좋은 숲을 만들고 싶다면 못생긴 소나무만이 산을 지킨다는 경귀를 잊지 말자. 세계적 인재 쟁탈의 시대이다. 인재가 나고 일 할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은 시대의 책임이다. 국가전략의 총체적 재구성 필요AI는 이미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이 기술을 다룰 ‘사람’, 그 사람을 품은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규율하는 ‘국가의 제도와 법’이 어떻게 설계돼 있느냐에 달려 있다.말로는 ‘AI 강국’을 외치면서 정작 그 기반이 되는 인재는 없고 기업은 법에 묶여 있으며 노동 제도는 과거 산업사회의 유산에 갇혀 있다면 그 나라는 혁신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인공지능은 이제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이다.기술은 사람이 만들고 그 사람은 훈련을 통해 길러진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을 설계하며 다양한 분야를 연결할 줄 아는 융합형 인재가 중심이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대학 중심, 학력 중심, 정답 중심의 인재 양성 구조에 머물러 있다. 'AI 인재 10만 명 양성'이라는 정부 목표는 요란하지만 정작 기업이 원하는 실전형 인재는 배출되지 않는다. 결국 해외 인재를 수입하거나 우리 청년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간다.이제는 숫자가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실무 중심의 AI 교육 플랫폼 구축, 학위보다 역량을 중시하는 인증 제도 도입,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협력하는 실전 훈련 체계, 청년 대상 AI 창업 전용 지원 시스템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단발성 예산 지원이 아니라 국가전략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진부한 대학교육의 가두리를 벗어나 기업형, 실전형 인재양성 실행 시스템이 절실하다. AI 기술은 실험과 반복, 속도와 민첩성이 생명이다. 그런데 주52시간 근로제처럼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하고 그 외에는 연구실조차 출입하지 못하는 제도 아래서 혁신이 가능할까? 특히 스타트업은 낮에는 회의하고 밤과 주말에 코드를 짜고 테스트한다. 이것이 현실이다.현행 노동법은 안전망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도리어 과거 산업의 틀이 신산업의 싹을 자르고 있다. AI 시대에 맞는 노동 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첫째, 근로시간 총량제를 기반으로 한 근로 시간 자율화가 필요하다. 둘째, 성과 기반 계약제의 유연한 적용과 고용의 탄력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재택·원격근무 등의 근무 형태 다양화를 수용하고 멀티 JOB 종사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산업 특성별 차등 적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노동자의 희생 강요가 아닌 기업의 성장과 개인의 자율을 동시에 보장하는 상생 구조로 가는 길이다. 그릇을 지키려면 깨지 말아야 한다. 노조도 시대에 맞춰 진화해야 노조는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는 중요한 조직이나 산업이 바뀌면 그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AI는 전통적인 노동을 빠르게 대체한다. 자동화, 로봇, 생성형 AI가 이미 금융, 물류, 교육, 서비스 분야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 중심의 강성 노조가 기존 일자리를 절대적으로 지키려 하거나 신규 고용을 제한하려 든다면 전체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투쟁형 노조’가 아니라 미래형 ‘전환형 노조’다 역량과 직무 전환 훈련에 적극 참여하고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 내재화에 나서며 성과에 따른 보상 시스템을 수용하는 성장형 파트너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노조가 산업 전환의 주체로 진화하지 못하면 그 틈을 다국적 기업과 플랫폼 기술이 가져가 내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일자리 기반 자체를 갉아먹게 된다.AI 기술을 둘러싼 규제는 아직도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에 집중돼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의료정보 활용 제한, 데이터 이동 제한 등은 AI 산업의 생태계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심지어 ‘AI 윤리’라는 이름으로 기술 개발 자체에 부담을 주는 움직임도 있다. 물론 기술은 윤리와 함께 가야 하지만 그것이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국가는 이제 산업의 심판자가 아닌 코치가 되어야 한다.선허용-후규제 원칙으로 신기술 실증특구 확대, 정부 주도의 간접 기술 투자와 규제개선 컨트롤타워 구축, AI 기술과 사회적 안전망을 병행 발전시키는 전략적 접근의 선택 없이는 한국은 규제의 정글 속에서 다른 나라가 만든 AI를 수입만 하게 될 것이다.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일이다.인재가 모이고 기업이 자유롭게 실험하며 성과에 따라 보상이 돌아가고, 실패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제도. 이것이 AI 시대 일자리 정책의 핵심이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방향은 있다. 규제보다 실험을, 통제보다 신뢰를, 고정보다 유연함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국가가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다. 미래는 지금 시작된다. AI는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지만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기술을 움직일 사람, 그 사람이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제도, 그 제도를 설계할 국가 전략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가 결정한다. 인재가 울창한 숲, 국가가 그 길을 열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2025.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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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와 코스트코의 성공 방정식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올다쿠’. 한국 유통업계의 3대 브랜드인 올리브영과 쿠팡, 다이소를 일컫는 신조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제품을 파는 다이소의 성과는 상식을 뒤흔든다. 1000~5000원 가격의 생활용품을 파는 다이소는 지난해 3700억원의 이익을 냈다. 영업이익률이 9.4%에 이른다. 또한 미국의 유통 브랜드 코스트코가 한국 대형마트 시장에서 올린 성과도 눈부시다. 코스트코는 이 시장에서 지난해 기준 6조5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2186억원(영업이익률 3.3%)의 이익을 냈다. 월마트, 까루프 등 글로벌 유통 거인들이 줄줄이 짐을 싼 그 한국 시장에서 말이다. 다이소와 코스트코는 어떻게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두 브랜드는 얼핏 보기에는 근본적으로 매우 다르지만 ‘다른 듯 같은’ 흥미로운 브랜딩 전략이 숨어 있다. 다이소의 발견 - 선택의 마법을 풀다다이소가 사업을 시작할 무렵 이 브랜드 앞에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이미 시장에는 수많은 ‘1000원숍’들이 있었고, 소비자들은 싸구려 물건을 파는 곳 정도로 인식했다. 그때 다이소의 전략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상품을 들여놓되, 가격은 5000원 이하로 단 6가지로만 매기겠다는 것이었다.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이때부터 다이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더 이상 가격을 비교하지 않게 된 것이다.올리브영에서 립스틱 하나를 사려면 수십 개 브랜드의 수백 가지 제품을 가격대별로 비교해야 한다. 하지만 다이소에서는 그냥 ‘2000원짜리를 살까, 3000원짜리를 살까’ 정도만 고민하면 된다. 뇌의 인지부하가 급격히 줄어든 순간이다. 또한 다이소는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는다. 제품의 본질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원가를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였다는 관점에서 보면 다이소의 이 원칙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소비자 발길은 이어졌다. 특히 뷰티 부문 성과가 눈부시다. 지난해 화장품 매출은 전년 대비 144% 급증했고, VT코스메틱 같은 브랜드들이 올리브영 대신 다이소 입점을 택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까지 다이소 전용 브랜드를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했다.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다이소 쇼핑리스트’가 넘쳐났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 필수 코스로 다이소를 꼽았다. 해외카드 결제도 50% 늘었다. 광고 한 번 없이도 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이다. 코스트코의 실험 - 20만개를 4000개로미국의 유통 공룡 월마트에는 20만종이 넘는 제품이 있다. ‘가장 다양한 제품이 있는 곳’이 그들의 전략이다. 하지만 코스트코의 전략은 ‘전문가들이 고객을 대신해 각 카테고리별로 가장 좋은 제품 4000종을 선택하고, 가장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객들은 ‘코스트코에 있는 건 이미 선별된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선택의 시간을 줄여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1994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코스트코 앞에는 월마트와 까르푸라는 선배들의 실패 사례가 있었다. 모두가 로컬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코스트코는 정반대 길을 택했다. 전세계 코스트코가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표준화원칙 속에서도 로컬의 소비자들은 가격대비 더 높은 가치에 공감했다. 코스트코는 2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하나의 상징을 만들었다. 바로 ‘2000원 핫도그 세트’다. 물가가 오르고 원자잿값이 뛰어도 이 가격만은 절대 올리지 않았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고객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이 회사는 절대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구나.’코스트코 역시 전통적인 광고를 하지 않았다. 대신 회원들의 입소문에 의존했다. 연회비를 받으면서도 광고비를 아껴서 그 돈을 다시 상품 가격 인하에 투자했다. 코스트코가 상품 마진율을 15%로 고정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이마트의 절반 수준이다.결과는 어땠을까? 매장당 매출은 3436억원으로 국내 대형마트 평균의 4배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의 72%가 연회비에서 나왔다. 상품은 ‘미끼’였고, 신뢰가 ‘진짜 상품’이었던 것이다.두 브랜드가 만나는 지점언뜻 보면 이 두 브랜드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온 듯하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매우 닮아 있다.첫 번째로 선택을 단순화했다. 무한한 선택지는 고객을 지치게 한다. 다이소는 3만개 상품의 가격을 6가지로 줄였고, 코스트코는 20만개 상품을 4000개로 줄였다. 그렇다고 선택의 다양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양성은 브랜드가 책임지고, 고객의 선택 고민을 해소한 것이다.두 번째는 가격전략의 앵커를 만들었다. 앵커링은 배가 닻(anchor)을 내려 한 지점에 고정되는 것처럼, 첫 번째로 제시된 가격이 기준점이 되어 이후 모든 가격 판단에 영향을 주는 심리 현상이다.다이소의 1000원 제품, 코스트코의 2000원 핫도그 세트처럼 절대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으면 고객은 안심한다. 하나의 상품이 전체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낸다.세 번째는 광고보다 신뢰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좋은 가격과 좋은 품질 자체가 가장 강력한 광고다. 고객이 브랜드의 전도사가 되는 순간, 마케팅 비용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네 번째는 가격 이상의 가치 제공이다. 다이소는 1000원 제품에 1000원 이상의 만족감을 제공하고 코스트코는 연회비 이상의 혜택과 경험을 제공했다. 핵심은 고객이 이득을 봤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다.다이소와 코스트코의 성공은 우연일까? 복잡함을 단순하게, 의심을 신뢰로, 고민을 확신으로 바꿔준 브랜드가 승리한 것이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두 유통 브랜드가 보여준 원칙은 디지털 시대에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드들의 필수 조건이 될 것이다.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2025.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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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도 문 닫게 했다”...해커들의 새 수법 '랜섬웨어'는 무엇? [한세희 테크&라이프]

산업 일반

100년 역사의 독일 중소기업이 해킹 공격으로 파산을 선택하는 일이 얼마 전 벌어졌다. 100년 동안 냅킨을 만들어온 파사나(Fasana)라는 기업이 5월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회사의 IT 시스템이 마비됐다. 랜섬웨어는 기업이나 기관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 데이터나 실행 파일에 암호를 걸어 못쓰게 만드는 악성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몸값’을 뜻하는 ‘랜섬’(ransom)이란 말 그대로, 회사의 핵심 데이터와 운영 능력을 인질로 삼아 돈을 뜯어내는 사이버 범죄 수법이다. 파사나는 업무 시스템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고, 송장 작성이나 주문 처리 같은 필수 작업도 할 수 없었다. 공격 다음날 하루에만 25만유로(약 3억7000만원) 상당의 주문을 받지 못했고, 2주 동안 손실은 200만유로(약 31억원)으로 불었다. 직원 급여 지급도 어려워졌다. 한달 가까이 시간이 지나도 일부 시스템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이 회사는 파산을 신청하고 새 주인을 찾고 있다. 해커는 IT 시스템을 장악해 공장 안 모든 프린터로 협박 메시지를 출력했다니, 출근해서 이 메시지를 본 직원들이 얼마나 놀랐을 지 짐작도 안 간다. 랜섬웨어와 같은 사이버 공격은 이처럼 ‘사이버’ 공간에 머물지 않고, 실체적 위협을 주고 있다. 영국에선 병원에 진단 및 병리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이 기업과 거래하는 대형 병원들의 진단과 진찰, 수술 등이 연달아 영향을 받았다. 1710건의 수술이 연기됐고, 환자 1만3500명의 혈액 샘플을 폐기했다. 영국 킹스칼리지 병원에서 최근 사망한 한 환자에 대해 병원측은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병리진단 서비스 마비로 혈액 검사 결과 확인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사망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2020년 독일에선 뒤셀도르프대학병원이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IT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응급 환자가 제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환자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해커가 “대학을 공격하려 했는데 실수로 병원을 공격한 것”이라며 암호가 걸린 데이터를 푸는 키를 그냥 제공하긴 했다. 랜섬웨어는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큰 문제가 됐었다.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서적 판매와 공연 티켓 예매 등의 서비스가 6월 9일부터 1주일 가까이 장애를 겪었다. 국내 출판 시장의 가장 큰 판매 채널인 예스24 운영에 차질이 생기면서 많은 출판사와 작가들이 판매 부진을 겪었다. 공연장에서 입장권 구매 내역을 확인할 수 없게 돼 공연을 찾은 관객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예스24를 공격한 해커는 랜섬웨어 공격을 풀어주는 대가로 금전적 이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해커들의 쉬운 먹이감사실 예스24는 거의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라 해킹 공격으로 인한 장애가 곧 알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대중과 접점이 없어 잘 알려지지 않을 뿐, 기업들이 랜섬웨어 공격의 피해를 입고서도 쉬쉬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천억원 매출의 중견 제조 기업이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중요한 기술 기밀을 활용할 수 없게 되거나 제조 라인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피해를 겪기도 한다. 이런 기업은 매출 규모가 크고, 납기에 맞춰 제조 라인이 일정대로 돌아가야 하기에 업무 및 생산, 운영 시스템에 대한 공격은 기업 활동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반면 대형 IT 기업처럼 전문적인 보안 인력을 꾸려 날로 변화 발전하는 해커들의 공격 기법에 대응하기엔 무리가 있다. 결국 해커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기 십상이다. SK쉴더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에서 확인된 랜섬웨어 피해 사례는 2575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2% 늘었다. 작년 4분기보다는 35% 증가했다. 또 신규, 변종 랜섬웨어 그룹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랜섬웨어 공격은 여러 우려스러운 경향을 보인다. 암호화로 시스템을 마비시키는데 머물지 않고, 기업이나 조직의 민감한 데이터를 훔쳐 온라인에 유출하는 ‘이중 갈취’ 수법을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이버 범죄의 무서운 확산 속도 랜섬웨어의 서비스화도 확산 추세다. 랜섬웨어를 개발한 해커 조직이 다른 범죄자들에 랜섬웨어를 빌려주어 사이버 공격을 하게 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를 연상시키는 ‘서비스로서의 랜섬웨어’(RaaS)다. 랜섬웨어뿐 아니라 로그인 정보 탈취를 위한 멀웨어, 분산서비스거부공격(DDoS) 도구 등 여러 사이버 범죄 도구를 같이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로 성장하기도 한다. 생성형 AI로 악성코드를 쉽게 만들거나 변형하고 설득력 있는 피싱 메일을 대량 작성해 보내 설치를 유도하는 등 사이버 범죄의 생산성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반면 선량한 기업이나 조직의 위험은 더 커진다. 중견 제조업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곳들이 특히 위험하다. 많은 환자의 민감 의료 정보를 다루며 운영 시스템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대형 병원, 역시 수많은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가진 대학교나 교육 행정 기관 등에 대한 공격이 늘고 있다. 이런 곳들은 한마디로 ‘먹이감은 많고, 대응 역량은 부족한’(target rich, cyber poor) 곳들이다.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이를 지킬 역량은 모든 조직에서 비례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닌지라 랜섬웨어 같은 해킹 공격 위협은 당분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자칫하다간 랜섬웨어에 당해 꼼짝없이 돈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듯 해커와도 타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비즈니스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 원칙만 고수하기도 쉽지 않다. 피해 예방법은 사실 별로 재미없는 내용이다. 조직 내 전반적인 보안 투자를 늘이고, 의심스러운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링크 등을 클릭하지 않는 등의 기본적 대응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5.07.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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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출신 장관 후보자와 인사청문회[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이재명 정부의 초대 내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6월 23일 10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고 1개 부처 장관을 유임시킨 것을 시작으로 같은 달 29일 6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추가 지명했습니다. 이번 내각은 짧은 인선 기간에다 시급한 국내외 위기 대응이 절실한 상황을 고려해 전문가와 실무형 인재를 대거 발탁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주요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들이 기업 경험이 있는 현장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을 하다가 발탁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이면서 7년 가까이 기업 현장에서 일해왔는데요, 현직 기업인이 곧바로 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은 전례가 드뭅니다. 또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삼성·SK·LG를 거친 AI 전문가 중 전문가이며,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국내 대표 IT(정보통신) 기업인 네이버 대표이사 출신으로 포털과 중소기업의 상생 생태계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경제사령탑인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예산통·정책통으로 불리는 정통 관료 출신이지만 ‘AI 경제 혁신’을 외치는 혁신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이처럼 기업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이재명 정부의 1기 경제부처 수장을 맡으면서 산업계의 기대가 큰데요, 기업 상황을 잘 아는 만큼 한쪽으로 치우친 경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네거티브(법률·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 중심의 규제 정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좀 더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한 기업 임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번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들을 보니 말만 그러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7월 내내 진행될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입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정책 검증보다는 정쟁과 신상털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야당은 김 후보자의 전 부인 및 자녀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하는 등 가족까지 탈탈 털려고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금도를 넘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김 후보자는 야당이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부한 가운데 범여권 정당 의원들의 찬성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지명 29일 만에 제49대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이번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가족까지 탈탈 터는 먼지털기식 검증이 아니라 정책 검증이 중심이 됐으면 합니다. 오랜만에 발탁된 기업 출신 전문가들이 내수 부진에 관세 충격 등 복합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후보자들도 야당의 문제 제기를 정쟁용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청문회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입니다.

2025.07.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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